[기고] 허상수 변호사, 시골변호사의 제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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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허상수 변호사, 시골변호사의 제주생활
  • 허상수 변호사
  • 승인 2020.07.2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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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에 로펌 사직하고 고향 제주에서 개업
어느듯 18년차 중견 변호사, 고향을 지킬 것
제주에서 개업중인 허상수 변호사
제주에서 개업중인 허상수 변호사

[제주=nbn시사경제] 허상수 변호사/권대정 기자=2002. 6. 2. 서른넷의 나이에 제주에서 개업을 감행했다. 로펌에서의 과중한 업무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고향에서의 변호사 개업을 어려서부터 꿈꿔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구들도 갑작스런 결정에 놀라했다.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고. 지금의 가장 적기라고 우겨대며 그들을 안심시켰지만 나 역시 내심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때마침 법원 앞 신축 건물에 사무실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제주지방변호사회의 스물다섯 번째 막내 변호사가 되었다. 작고하셨거나 국회위원이신 몇 분을 제외하면 실제 송무 업무를 하는 변호사는 스물두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서른넷 풋내기의 제주에서의 시골 변호사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개업 과정에서 인구가 45만밖에 안 되고, 번번한 기업은커녕 백화점도 없는 그냥 신혼여행지 1순위에 불과한 제주도에서 무슨 사건이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기우였다. 환상의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첫 사건은 수산물품질관리법위반이었다. 개업식은 커녕 기록봉투도 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이 구속되었다며 젊은 부산여자가 찾아왔다. 중국산 갈치를 제주산이라며 제주도내 유명 향토음식점에 납품하였다가 구속 기소된 것이다. 본인은 중국산 가격으로 납품했기에 이득을 본 것도 없고, 업주들도 수입산이란 걸 알고 있었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그러나 제주지방법원은 다른 지역보다도 환경 범죄와 농수축산물 관련 범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었다.  다행히 그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다.

제주에서 개업중인 허상수 변호사

로펌에서의 나의 주 전공은 증권관련 사건이었다. 내심 관련 사건에 관한 수임을 기대했었으나 실제 소송으로 진행된 것은 지금껏 단 한 건밖에 없었다. 나는 제주도가 1차 산업과 서비스 및 관광산업을 주력으로 하여서인지 도민들이 증권투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착각이었다. 많은 도민들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다. 다만 지역 특성상 원만히 합의가 이루어져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내가 맡았던 사건은 증권사 부지점장이 본인의 개인계좌로 고객들로부터 투자금을 입금 받아 운용하던 중 행방불명된 사건이었다. 증권사는 부지점장 개인과의 거래라며 배상을 거부했다. 이에 고객들은 증권사에게 부지점장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라며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승소를 이끌어냈다. 나름 뿌듯했고 이를 계기로 증권 사건이 있으려나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그 것이 마지막이었다.

위 각 사건이 나의 제주에서의 첫 사건과 유일한 사건이었다면, 과수원과 농지가 많은 제주의 특성상 비일비재한 사건들이 있다. 바로 농로와 경계 문제 사건이다. 맹지인 과수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남의 땅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경우 땅의 일부를 통행로 부지로 매수하거나 양해 하에 무상으로 통행하는 경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기에서 통행로 부지를 매수한 경우에도 애초에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분할 이전등기를 하지 않은 경우가 나중에 문제가 된다. 매매 당시에는 친족이거나 이웃사촌이기에 문서로 해두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자식에게 상속되거나 제3자에게 매도된 경우에는 통행로의 매매 자체를 모를 수가 있어 다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경우 과수원, 밭, 임야의 경계에 방풍림을 심거나 돌담을 쌓는데, 지적 경계선과 다른 경우가 흔하다. 우연한 기회에 경계측량을 하다가 내 땅에 돌담이 침범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다툼이 되는 것이다.

허상수 변호사의 캐리커쳐

그러나 평화롭던 제주에 중국인들의 땅 투기가 광풍처럼 불어 닥쳤고, 대도시에 살며 지친 자들의 제주 이민이 늘어나면서 상주인구가 65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주택수요의 급증으로 건설경기는 사상최대의 호황을 맞게 되었다. 여기에다 성산포 지역이 제주 제2공항 부지로 지정 발표되면서 제주의 토지와 건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토지와 건물 가격의 상승은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건물 가격의 상승은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건물주와 임차인간의 소송이 줄을 이었다. 거기에다 가족 간 유류분 분쟁이 늘었다.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단독으로 토지를 증여받은 장남을 상대로 다른 형제들의 유류분 청구가 엄청 늘었다. 예전 같으면 토지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아 관심도 없었던 것을 갑자기 돌밭이 몇 억씩 가게 되자 눈이 뒤집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드 문제로 중국의 투자가 중단되었고, 높은 물가로 인해 역이민자들이 속출하였다. 이는 주택수요의 급락으로 이어졌고 건설경기의 불황은 미분양 사태와 공사 중단 등의 사태를 야기했다. 제주에서의 공사대금 사건 수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두 집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다보니 제주 생활 18년차가 되었다. 지천명을 언제 넘겼나 싶었는데 이제는 후배들이 중견이란다. 노안 라식 수술을 하여 기록 보기가 조금은 수월해 졌지만 이 것 역시 언제까지 유지될지. 남들은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지만 나름대로의 은퇴 기준을 정했다. 변호사란 직업이 의뢰인들의 스트레스를 받아먹고 사는 업이라 했던가. 의뢰인들을 품어주고 다독여주는 것이 버거워지면 그때가 나의 은퇴일일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고향 제주가 더욱 더 평화롭고, 제주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며 시골변호사로서 제주를 지킬 것이다.

제주에서 개업중인 허상수 변호사

nbn 시사경제, nbn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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