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철(鐵)의 예술가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영흥도 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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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철(鐵)의 예술가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영흥도 명물
  • 김형만 선임기자
  • 승인 2020.10.20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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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nbn시사경제] 김형만 선임기자

옹진군 영흥면에 철(鐵)의 예술가가 있다. 남들은 대장장이라 말하지만 “나는 섬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갯일 도구를 만드는 장인이다”라고 말하는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다.

이곳에서는 영흥면 주민들이 주업으로 하고 있는 농사일과 갯벌 일에 필요한 호미, 쇠스랑, 도끼, 칼, 낫 등을 전통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문화재청도 그의 장인정신과 실력을 인정했다. 그는 2008년 화재로 훼손된 대한민국 국보1호인 숭례문 복구 작업에 쟁쟁한 실력가들을 대표해 참여한 실력자다.

“대장간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삶, 때론 고되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장인의 길’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는 이 대표의 대장장이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인천 송림동 대장간이 생애 첫 직장

옹진군 대부면(現 안산시 대부동)이 고향인 이 대표는 성인이 된 후 직장을 찾아 인천 송림동으로 올라와 망치소리에 이끌리듯 찾아든 대장간이 생애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되었다.

“대장간에 첫발을 디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처음 일을 배울 때 무척 고되고 힘들었다는 이 대표는 무쇠덩어리가 대장장이 손길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도구로 탄생될 때 끌림을 느꼈고 일의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대장간 일이 천직으로 알고 대장장이 인생을 살았다.

다른 사업을 위해 잠시 대장간 일을 접었던 때가 있었지만 바로 정리하고 영흥대교가 개통되던 해 아내의 고향인 옹진군 영흥면으로 이사와 대장간을 열고 20여 년간 섬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 도구를 만들어 왔다.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대장장간 일의 매력과 대장장이로 사는 보람은?

옛날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철재도구를 대장간에서 만들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농사 도구 등 우리 생활에 필요한 각종 도구를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대장간은 사향 길로 접어들었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대장간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철재도구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니며 소비자들의 욕구와 용도에 맞게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대장간에서 만드는 도구를 찾고 있다. 나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대장간 일을 접을 수 없었다.

1천도가 넘는 대장간 화로 안에서 시뻘겋게 달구어진 쇳덩이를 꺼내드는 순간 대장장이 머릿속은 만들어낼 도구가 그려진다. 도면은 없다. 오직 숙련된 기술과 감각에 의존해 모루 위에 있는 쇳덩이를 망치로 쳐서 도구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매력이 지금껏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하나의 도구를 만드는데 종류와 용도에 따라 제작 시간이 다 다르고 완성까지 몇 번의 망치질을 하는지 모른다. 화로의 뜨거운 열, 반복되는 망치질에 온몸은 땀으로 젖고 온몸이 뻐근하지만 주문한 사람이 흡족해 하면 만족한다. 이 일은 영흥도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이며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이며 보람이다.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대표 (사진=김형만 선임기자)

 

영흥민속대장간 미래는?

농사와 갯벌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대장간은 농어촌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다.

요즘은 외국산 저가의 수입품들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대장간 운영이 힘들지만 여전히 우리 고유의 전통방식으로 제작한 도구들을 찾는 고객들이 있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영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10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모르겠다. 내가 힘에 부쳐 손을 놓으면 대장간일도 맥이 끊긴다.

대장장이 손을 통해 만들어진 도구와 시중에서 판매되는 도구의 강도는 다르다. 앞으로 영흥면 주민들은 호미나 조세, 낙지호미 삽 등 각종 도구를 다른 지역으로 사러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 일을 배울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고되고 힘들어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예전처럼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지 않는다. 용도에 맞게 모양을 잡고 쇠의 강도 조절 등 기술을 필요로 하는 중요 과정 외에는 화로의 풀무질, 쇠 변형 작업 일부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제작 과정이 간소해졌다. 눈썰미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기술을 배우면 많은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지역 특성상 대장간은 앞으로도 존재해야하는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밥은 굶지 않는다. “누구든 도전해라!”

또, 우리 영흥면 소재 학교 학생들에게도 대장간이 소개가 되었으면 한다.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을 배우고 체험하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아 줬으면 좋겠다. “학생들 중에 이 일을 배우려고 하는 지망생이 나올 수도 있지...(웃음)”

섬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도구를 전통방식으로 제작하며 묵묵히 외길 인생을 살아온 이규산 대표는 말한다.

“난 설계도가 필요 없다.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 만든다. 이것이 5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쌓인 내공이다”
 

nbn 시사경제, nbn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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