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예가 전홍성 작가 “첨필붓으로 버스킹과 공개 오디션을 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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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예가 전홍성 작가 “첨필붓으로 버스킹과 공개 오디션을 열고 싶어요”
  • 김필수 기자
  • 승인 2023.03.03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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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중과 함께 하는 꿈을 꾸다’
진홍성 작가 (사진=김필수 기자)
진홍성 작가 (사진=김필수 기자)

 

[nbn시사경제] 김필수 기자

전도유망한 법학도가 방황의 시기를 넘기고 공부에 집중을 위해 시작한 서예에 빠져 서예가가 되고 자신에 맞는 독특한 붓을 개발해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첨필붓’의 개발자이며 일명 ‘첨필붓체’를 완성한 적석 전홍성 작가는 서예가 순수예술 영역을 넘어 일반 대중이 함께 하는 ‘첨필붓체 공개 오디션 대회’를 개최하는 꿈을 꾸고 있다. 
전 작가는 대학 시절 서예를 접하면서 서예가의 길을 걷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집안 가업을 이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전업 작가의 길을 접었지만, 서예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만의 예술세계 개척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편집자주]

[nbn시사경제]는 ‘첨필붓체’의 창시자 적석 전홍성 작가의 예술세계에 대해 들어본다.

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저는 전라북도 순창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에서 터를 잡고 생활한지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대학시절 잠깐 방황을 떨치고 학업에 정진하기 위해 시작한 서예가 이제는 내 인생의 제일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예의 시작은 1994년 학정 서예학원에서 이돈홍 선생님으로부터 기초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가 좋아서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전문적인 서예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시간을 쪼개서 연구하다 보니 온전히 내 것이다하고 내놓을 만한 작품세계를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작가님의 호가 적석인데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積(쌓을적), 石(돌석)인데 돌도 흩어져 있으면 아무 쓸모가 없지만 다듬고 쌓아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에 착안하여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을 쌓는 심정으로 서예를 연구하고 정진하여 서예가로서부끄럽지 않은 한 점의 작품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적석으로 명명했다.

작가님의 초창기 작품활동은 어떠 셨는지?
-제가 1994년도 학정 이돈홍 선생님으로부터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서예에만 전념하지 못해 특별한 수상 경력은 없지만, 저 나름대로 서예를 연구했으며 군대를 다녀와서는 공부를 위해 일본행을 택했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부를 접고 돌아와 부모님의 가업을 도우며 ‘첨필붓’ 개발에 매진했다. 
이런 가운데 ‘첨필붓’으로 TV에 출연하면서 해외에서도 연락이 오고 주변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첨필붓 (사진=김필수 기자)
첨필붓 (사진=김필수 기자)

작가님이 개발한 ‘첨필붓’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添(더할 첨),筆(붓필)로 붓을 더하여 길이를 조정한다는뜻으로 첨필붓으로 명명했다.
제가 서예를 시작하면서 많은 붓을 사용 해 봤지만 긴 붓을 사용할 때마다 어려움을 많이 겪다 보니 직접 붓을 만들어서 사용 해보자는 생각으로 약 15년 전부터 연구하고 개발에 전념해 왔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까지의 붓은 사용자가 직접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의 체형에 맞추게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있고 신체에 무리가 올 수 있어 오랜 시간 작품활동 하기에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불편함을 보완해 보고자 붓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철필붓’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 붓을 사용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는 약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붓을 사용하고부터는 작품활동 시간이 길어도 몸에 무리가 오지 않고 편안하게 활동하고 있다.이제부터는 ‘첨필붓’에 사용에 대한 홍보와 함께 서예가들이 편안하게 첨필붓을 사용할 날을 기대해 본다.

작가님이 추구하는 서체는 무엇인가요?
-이돈홍 선생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독보적인 서체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추사체를 동경하고 항상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 개발한 ‘첨필붓’서예도 추사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큰 붓의 사용에 어려움을 느껴 더욱더 열심히 개발에매진했다.
아직 ‘첨필붓’서예에 대한 인식과 인지도가 낮아 활동하는데 힘들겠지만 꿋꿋하게 참고 걸어왔던 길을 계속 걸어 ‘첨필붓체’를 완성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마음속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작가님의 작품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과 이유는?
-한글로 쓴 ‘불멸의 이순신’작품을 좋아한다. 자신에게 닥친 어렵고 힘든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불멸의 정신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님의 정신을 본 받아 꿈꾸고 이루고싶은 예술가의 길을 가고 싶어서 항상 곁에 두고 읽으면서마음을 다잡고 있다.

앞으로 활동 방향이 있다면?
-전업으로 작가 활동을 하지 못해 특별한 수상 경력은 없지만 나름대로 서예가로서, 예술가로서 자부심을 갖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 서예 분야에새로운 영역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붓을개발했다.
이제는 ‘첨필붓’ 연구도 중요하지만 ‘첨필붓’을 널리 알려 첨필붓으로 서예 활동을 하는 예술가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서예가 예술가들만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내에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가 국민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예가 단순히 예술 영역을 뛰어넘어 일상생활로 들어가야 한다. 생활체육과 대중가요와 같이 흥미와 재미를 가지고 대중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 일선에 ‘첨필붓’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첨필붓’을 사용한 길거리 버스킹도 열고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형식의 행사를 진행해 서예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 

전홍성 작가의 작품들(사진=김필수 기자)
전홍성 작가의 작품들(사진=김필수 기자)

작품활동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첨필붓’ 개발하고 TV 방송에 출연하면서 방송을 보고 일본에서 재일교포가 한국까지 찾아왔다. 그는 붓에 관한 관심을 보이면서 ‘첨필붓’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 
또한, ‘첨필붓’을 알리기 위해 라이브로 서예 활동을 사회간접망 서비스(SNS)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통해 활동상활을 알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첨필붓’에 대한 관심이 늘어 가고 있는 것을 보니 자부심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은?
나는 1974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1994년부터 학정서예 학원에서 기초서예를 배우고 수십 년을 주경야독으로 서예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공모전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보다는 교과서적인 서예보다는 이상적이면서 서민적인 서예를 추구하고자 첨필서예 연구에 오랫동안 매진하고자 face book, Instagram, youtube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키워왔으며 Live 서예를 통해 살아있는 서예를 대중에게 알리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도 SBS KBS MBC 방송 출연을 통해 첨필붓을 소개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가 좋은 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첨필서예의 육성발전을 통해서 예술이 거듭나고 변화되길 희망하고 있다. 현대그룹을 세우신 정주영 전 회장의 명언(이봐, 해봤어?)처럼 첨필서예의 가치를 알려면 첨필붓을 잡고 도전을 해야 첨필붓의 진가를 알 수 있지만 생소한 분야다 보니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서예가로서 첨필서예 만한 것이 없다는 얘기가 들릴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볼 생각이다.
서예가로서 변방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첨필서예가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오늘도 첨필서예술을 통해 전통서예를 뛰어넘어 현대 서예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계신 분들의 노고가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첨필붓 서예로 온 국민들이 즐거움 가득한 예술세계를 경험하는 희망을 꿈꿔 본다.      

press30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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