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소릿길(吉) 六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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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소릿길(吉) 六잡가
  • 이점석 기자
  • 승인 2024.06.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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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한 소리 봄을 일깨우다  

[nbn시사경제] 이점석 기자

정유정 경기소리꾼.사진제공=정유정.이하동일
정유정 경기소리꾼.사진제공=정유정.이하동일

  5월 11일(토) 오후 3시 ‘2024 은덕문화원 전통예술 한마당’은 은덕문화원(창덕궁 옆) 주관으로 경기민요 소리꾼 정유정(국립남도국악원 성악단원)을 초청해 경기12잡가 가운데 육잡가(‘적벽가’, ‘형장가’, ‘평양가’, ‘방물가’, ‘출인가’, ‘달거리’)를 직창(直唱)했다.
 

한국 전통음악을 계승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땅의 기운을 받은 한옥과 최대한 가까운 공간에서 옛 경기명창들의 무대를 닮고자 한다. 앉은소리로 꿋꿋하면서도 단단한 경기소리의 멋과 깊이를 살린 젊은 경기소리꾼 정유정의 소리가 돋보인 무대였다. 

 경기소리꾼에게 12잡가는 명창이 되기 위해 꼭 디뎌야 하며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 같은 소리이다. 경기소리를 계승, 전수, 연마한 예능 수준을 인정받기 위해서도 12잡가를 준비해야 할 만큼 어렵고 중요한 소리이다. 

 정유정(鄭有靜)은 이춘희, 강효주를 사사하고, 이대 한국음악과 출신으로 동년배 중 최고 소리꾼이다. 그녀는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이수자, 제45회 전주대사습놀이 민요부문 일반부 차상, 제8회 강화전국국악경연대회 명창부 대상(문체부장관상) 실력 소유자이다. 

 12잡가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정유정의 소리 인생에 대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녀는 세 번의 경기소리 발표회를 하며 여섯 개의 잡가를 선보이며 기록했으나 남아있는 여섯 잡가는 특별하게 오로지 잡가에만 집중한 무대로 선보일 것이다. 

  정유정 소릿길(吉) 六잡가는 고수 안재현(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이수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5호 판소리고법 전수자) 반주로 12잡가 가운데 1. ‘적벽가’ 2. ‘형장가’ 3. ‘평양가’ 4. ‘방물가’ 5. ‘출인가’ 6. ‘달거리’ 순서로 구성되었고, 작품당 15분이 소요되었다. 

 순 서울 소리인 경기 12잡가는 8잡가와 잡잡가로 구분한다. 8잡가에 속하는 ‘적벽가’, ‘형장가,’ ‘평양가’와 잡잡가에 속하는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로 12잡가 가운데 많이 알려진 곡들을 제외하고 소리꾼들 사이에서도 잘 불리지 않는 곡들로 소리를 구성했다. 

 정유정의 6잡가는 대하소설의 시편 같은 묘미와 장편 발레의 갈라 쇼와 같은 경기소리의 음악적 에센스를 소지했다. 차기 공연을 위해 담보된 ‘유산가’, ‘제비가’, ‘선유가’,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의 궁금증을 해소할 이야기와 음악적 담론을 상상하게 했다.  

 순 서울소리인 경기12잡가는 서울에서도 듣기 힘든 귀한 소리이다. 이 소리가 올바르게 계승되고 보존되며 맥을 잇기 위해서는 경기소리꾼들이 잡가를 많이 실연해야 한다. 전통 한옥의 은덕문화원에서 울려 퍼진 서울의 옛 소리 잡가는 역사를 되살린 공연이 되었다.

1. 12잡가 中 적벽가 :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한 조조가 여러 번 죽은 고비를 넘기다가 관운장을 만나 목숨을 연명하는 내용으로 짜인  노래이며 아기자기한 시김새 대신 씩씩하고 무게 있는 소리를 사용해 호탕하고 쾌활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2. 12잡가 中 형장가 : 춘향이가 매를 맞고 흐느껴 우는 자탄가로 신관 사또가 수청을 들지 않는다고 춘향이를 매질하는 대목과 불쌍해하는 구경꾼들의 동정을 비롯하여 춘향의 정절을 엮은 노래다. 동정의 투로 시작되다가 춘향의 서러운 푸념이 계속된다.

3. 12잡가 中 출인가 :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춘향가의 ‘오리정 이별’, ‘남녀 이별의 정한’, ‘인생무상’ 세 가지 이야기를 사설로 구성, 두서없게 느껴지는 잡가이다. 한 가지 주제의 노래는 아니지만, 독립 대목들이 후렴구와 함께 독특한 형태를 갖춘다.

4. 12잡가 中 방물가 : 방물은 여성의 방에 비치된 패물, 세간, 의복, 노리개 등을 가리킨다.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과 연관된다. 한양 낭군에게 데려가 달라고 호소하는 여성 화자와 그를 달래며 온갖 방물을 주겠다며 달래는 낭군 사이를 대화체로 엮어 부른다. 

5. 12잡가 中 평양가 : 사랑 예찬, 평양 기생 월선 집에 놀러 가자는 한량의 노래다. 서도식 창법이나 다른 지역 소리 특징 없이, 서울식 소리와 음악적 특징들로만 짜여 있다. 시김새 없이 평범하고 담담한 소리로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맛이 난다.

6. 12잡가 中 달거리 : 예인 집단의 유희·수련용 노래다, 서로 다른 내용의 ‘월령가’, ‘적수단신가’, ‘매화타령’이 합쳐진 조합형 노래로서, 20세기에 완성되었으나 귀에 익고 반복적인 곡조와 이해하기 쉬운 사설로 12잡가 가운데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정유정은 민요가 아닌 잡가를 선택하여 격을 상승시키는 전문 공연 시간을 가졌다. 긴 호흡, 대사적 연기와 표정 연기, 미세한 전문 소리의 조율에 걸친 긴 시간의 노래는 소리꾼으로서 수계식이 같았다. 소리적 내공의 조용한 나들이 같은 공연이었다. 

 그녀는 신재효 선생의 ‘광대가’에 나오는 사설인 광대란 인물 치례, 사설 치례, 득음과 마지막 곡에서의 너름새까지 좋은 소리꾼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아직, 그 바닷가’, 새벽에도 일어나 소리하라면 소리하던 청소년 시절이 생각난다. 

 정유정은 먼 바닷가로 득음 여행을 떠나 있다. 홀로 태연한 척 외로워하며, 청춘을 소금기로 재어가는 시절은 인생을 값지게 하는 과정이리라. 송홧가루 날리던 창덕궁 옆 한옥에 양반으로 앉아서 경기잡가를 듣는 풍경은 선지식만이 즐기는 행복일 것이다. 

 정유정 소릿길(吉)의 六잡가, 의지적 실천의 정갈한 미래가 담보되는 보람 있고 뜻깊은 숨은 실력자의 차분하면서도 주변을 압도하는 무궁 영화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상급 관객들을 위한 고급 레퍼토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jumsuk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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