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도예가 우승보의 ‘온고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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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도예가 우승보의 ‘온고지신’
  • 이점석 기자
  • 승인 2024.07.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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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도공들에게 배운다”

[nbn시사경제] 이점석 기자

서양화 출신의 도예가 우승보. 사진제공=우승보
서양화 출신의 도예가 우승보. 사진제공=우승보

“전통은 죽어있는 박제같은 표본이 아니라 그것은 지금도 살아 숨쉬는 우리의 생활양식이다”우승보는 전승도예 작가이다,  한국의 오랜 도자기역사에서 고려청자, 조선백자로 잇는 분청사기 도예가이다.  그가 처음 전통도자기에 입문했을때 대단히 놀랐던 것은 거의 대다수의 전승도예 작가들이 옛날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도자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이시대에 살면서 이시대의 도자기를 만들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장인도, 조선백자를 구웠던 도공도, 그때 그시대의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 시대의 도예가들은 우리의 숨결, 우리의 얼을 그 뿌리에 두고 지금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있는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의 한복이 조선시대의 한복이 아니라 지금의 개량한복을 입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보다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정신을 잇는 것이 진정 중요한 우리의 정신문화의 계승인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그러다 삼십대 중반에 경남 양산에 도자기 가마를 가지고 있던 친척으로부터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 수십개의 달항아리를 마주했던 그때의 그 깊고도 고요한 정신의 세계는 그의 마음에 한국의 아름다움에 눈뜨도록 했으며 그를 평생 도예의 길을 걷도록 했다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의 준말로 조선시대의 백자와 더불어 주류를 이루었던 대표적인 도자기다. 백자나 청자는 사대부나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던 것으로  귀족풍인 것에 비해 분청사기는 한국의 민중 속에서 생산되었다. 

도예의 세계는 깊고도 고요하다
도예의 세계는 깊고도 고요하다

 

민중과 호흡을 같이한 도자기로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여 꾸미지 않으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익혀온 솜씨를 터득하여 마음으로 그저 있는 그대로를 만들었을 뿐이다. 
누구의 마음에 들게 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청자나 백자는 귀부인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든다. 분청사기는 발목이 드러난 촌아낙네와 같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분청사기는 활달하고 자유분방함이 그 특질이며 우리는 분청사기에서 서민적인 매력과 함께 민중의 힘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청사기야 말로 가장 분명하고 강하게 한국인의 심정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한국미술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분청사기는 문자 그대로  그릇표면에 백토를 분장하는 수법을 쓰는 그릇으로, 여인들이 분을 물에 풀어 얼굴을 치장하듯이, 자기도 백토를 물에풀어서 귀얄로 치장한다.우승보의 작품에는  인화문 당초문 등 전통적인 문양 외에도 지두문 추상적인 선문, 현대풍의 산수, 아파트 심지어 자동차까지 그의 작품을 장식하고 있다.

그는 도식적이고 식상한 전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그의 작품은 분청사기가 갖고 있는 전통적인 기법인 귀얄, 박지, 조화 등을 구사하면서도 작품의 기형과 문양은 대단히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도예 애호가로부터 공감을 받고 있는 것이다,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자각할 때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세계적인 도예가이자 평론가인 버나드리치가 세계유수의 알프레드 대학에서 언급했다. 

“제군들이여 여러분들이 추구해야 할  작품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조선이라는 시대의 도공들을 배우라” 고 했던 것이다.과연 그들은 도자 대학도 가본 적 없는 무지랭이 조선시대의 도공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것인가. 
김채원 기자

 

jumsuk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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