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단체 '소주한병' 20년 에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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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단체 '소주한병' 20년 에스프리
  • 이점석 기자
  • 승인 2024.09.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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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 마다 소주 한 잔에 던진 질문”

[nbn시사경제] 이점석 기자

소설가 단체 '소주한잔'의 모임에서 만난 7명
소설가 단체 '소주한잔'의 모임에서 만난 7명

‘소주한병’은 문학 결사체다. 일곱 명 프로페셔널 소설가들의 모임이다. 동호인이라고 하기에는 결합의 강도가 조금 세다. 멤버 중에는 아직 시집살이하는 며느리도 있고, 쌍둥이 손자 키우는 할머니도 있다. 나이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올해로 이십년이 됐다. 
멤버들은 한 명당 1년에 네 편의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 1년에 28편의 작품이 나오니 매월 2~3명의 작품에 대한 합평회를 한다.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은 청문회 불려나온 증인처럼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험한 말이 오고 가는 모양이다. 규정을 한 번 어기면 1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작품을 못 써서 손해고 돈이 나가서 손해다. 그러니 악바리 소설가가 될 수 밖에 없다. 
‘소주한병’은 소주 일곱 잔으로 분해되고 다시 한마음으로 결합한다. 일곱명 멤버가 아이슬란드 여행 갔을 때 유리공예로 만든 소주잔을 하나씩 샀다. 소주를 따르면 에메랄드 빛 호수가 되는 마법의 잔이다. 흔들릴 때 마다 한잔 씩 마시며 결기를 다진다. 그 술잔 속에 인생의 오후가 윤슬처럼 아름답다. 

일곱 빛깔 무지개의 조화
이들 7인이 소설과 맞짱 뜨며 지낸 세월이 무려 20년이다. 구자인혜, 김진초, 신미송, 양진채, 이목연, 이선우, 정이수(가나다 순), 일곱 잔 회원이 모여 소주 한 병이 되었다. 생김새도 성격도 사는 형편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만나면 일곱 빛깔 무지개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6인은 초창기 멤버 그대로고 한 자리만 몇 번 얼굴이 바뀌었다고 한다. 말 많고 시샘 많고 감정 기복 심한 여자들이 20년을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예사롭지 않다. 
“문학은 극복되는 게 아니잖아요?”
“오르면 오를수록 키가 커져 멀어지니 혼자는 지쳐서 못 갑니다. 우리처럼 같이 가야죠.”  
'소주한병'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굴포문학> 동인(지도교수 문광영/평론가‧전 경인교대 교수)이 모태였다. 여자로만 이루어진 굴포문학회는 작년에 이미 30년이 넘었다. 
시, 소설, 수필,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하는 굴포문학회에서 소설을 쓰거나 쓰고 싶은 사람이 따로 뭉쳐 합평회를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몇몇이 떨어져나가고 남은 사람이 7인이 2004년에 정식으로 '소주한병'을 결성했다고 한다. 
'소주한병' 창립 당시, 주축이 된 김진초‧이목연은 이미 소설가로 등단해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었다. 앞선 이의 바통을 이어받아 '소주한병' 작가들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렇게 도원결의보다 더 끈끈하게 뭉쳐서 올해 20년을 맞은 '소주한병'이다.    
이들 일곱 명의 소설가는 오늘도 소설 창작의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창작에 집중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합평 시간엔 어쩔 수 없는 압박에 시달리지만, 지난 20년간 한 번도 합평을 멈추지 않았으니 대단한 저력의 '소주한병'이라 하겠다.  
일곱 작가가 20년간 출간한 개인 작품집으로는 김진초 작가의 소설집 10권을 비롯해 최소 소설집 3권에서 5권 이상은 출간했다. 뿐만 아니라, 문학상 수상도 풍성하다. 

일곱명이 휩쓴 다양한 문학상
작가 개인이 받은 여러 상 중에서 대표적인 수상 경력만 짚어봐도 인천시문화상을 받은 김진초 작가,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이목연 작가, 한올문학상을 수상한 신미송 작가, 인천문학상을 받은 양진채 작가, 동서커피문학상의 구자인혜 작가, 한국소설작가상을 공동수상한 정이수 작가와 이선우 작가 등 화려하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라 소설집을 발간하면 책담회를 갖는다, 작가와 독자의 만남의 시간이다. 개인적인 책담회에 '소주한병' 일곱 회원은 동지로 참석해 박수를 보낸다. 공동 소설집 발간기념으로 '소주한병' 전원이 무대 앞에 자리를 잡은 적도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지정 책의 수도 인천’ 기념, 문학 인프라 구축 사업으로 인천을 소재로 한 테마 소설집 『인천, 소설을 낳다』를 '소주한병' 작가들이 공동 집필해 출간하고,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소주한병'이 공동 저자로써 소설집을 내기는 처음이었다. 이들은 이때 낸 공저 『인천, 소설을 낳다』로 의미있는 작업을 했다는 고무적인 평가를 받았다. 
'소주한병'의 은밀한 규칙은 소설 쓰기만은 아니다. 펜을 든 작가로 30여 개국 여행을 함께 했다. 함께 또 다르게 제각각의 오감으로 여행을 즐겼다. 연인과의 키스처럼 달콤하고, 관광객 인파 속에서 고독하고, 청춘이 드림카를 가진 듯 황홀하고, 어린아이로 천진하고, 가끔은 장기수처럼 막막하고, 이태백이 놀던 달에 소주잔 들고 합석하고, 그러다 질문하는 솔루션이 날카로워 어지럽고, 또 그러다 그린라이트에 설레도 보고, 측은지심에 가슴이 젖기도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했다. 
 “우리 소주 일곱 잔이 모이면 못 할 게 없어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소주한병'은 소설이야 당연하고, 인생길 동반자로 모험과 행복을 함께한다.  
“우리가 전생에 좋은 인연으로 잘 어울렸나 봐요.” 
이 말 속에는 일곱 문우의 가슴에, 농작물을 가꾸는 정성으로 자주 발걸음하는 농부의 마음이 들어있다. 살피고 아끼고 나누고 함께하는 마음이, 이웃보다 혈육보다 더 온전히 안긴다. 그래서 보기 좋다. 앞으로도 계속 뜨거운 가슴으로 소주잔 부딪치며 즐비한 날들을 건강하게 동행하고 싶어지는 '소주한병'이라 하겠다. 

jumsuk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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