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n시사경제] 편집국
면역을 간단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은 시체를 보면 된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부패가 시작된다. 구더기가 생기고 각종 미생물들이 달라붙어 몸을 갉아 먹는다. 불과 몇 주에서 수개월 만에 뼈만 남고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바로 면역력 때문이다.
이렇듯 면역은 생명을 유지하는 힘이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부패시키는 박테리아와 미생물은 어디서 따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하지만 면역 시스템이 견고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부패가 일어나지 않는 것뿐이다.
그래서 면역 시스템은 군대에 비유되기도 한다. 정확하게는 군대와 경찰이다. 조직이 손상되거나 미생물에 감염되는 경우처럼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발생하면 호중성 백혈구(neutrophil)가 제일 먼저 상처 부위에 도달한다.
호중성 백혈구의 가장 특징적인 기능이 바로 신속한 이동과 세균의 포식 및 살균이다. 강한 급성 염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부 침략자와의 전면전 혹은 국지전을 벌이므로 군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은 교감신경의 자극과 함께 상승한다.
반대로 평화 시에는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놓이게 된다. 이때는 전체 백혈구의 약 25% 정도를 차지하는 림프구(lymphocyte)가 돌아다니면서 내부 단속을 한다. 군대가 아닌 경찰인 셈이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활동이 돌연변이된 세포를 찾아 제거하는 것이다. 바로 암세포다.
그래서 암 예방을 위해서는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 느긋하고 속 편하면 된다. 단, 환경에 상관없이 느긋하고 속 편해야 한다. 환경에 지배되면, 현대인들은 교감신경 우위의 생활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은 암 발병 위험의 증가다.
그렇다고 해서 면역력이 무조건 강해야 좋은 것은 아니다. 면역반응이 너무 약하면 미생물에 무너지지만 너무 강해도 자멸하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조금만 항진돼도 자가면역 질환으로 공격한다. 자가면역 질환은 말 그대로 면역력이 ‘나’ 자신도 공격하는 질환을 말한다. 면역력 강화가 면역반응을 강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의학적 의미의 면역은 ‘나’ 이외에 모든 것을 퇴치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단순히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감염과 맞서 싸우는 수준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장내 미생물은 세균이지만 ‘나’의 일부로 인식된다.
최소 1500만 년 전부터 함께 동거해온 ‘같은 편’이다. 따라서 공격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장내 미생물이 외부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니 연합군인 셈이다. 반대로 암세포는 ‘나’의 세포지만 같은 편이 아니다. 가만 놔두면 ‘나’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면역 시스템은 암세포를 공격한다.
그런 까닭에 단순한 항원·항체 모델이 면역의 전부가 아니다. 백신은 특정 병원체에 대해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킨다. 백신 주사 후 항체가 생겨나면 면역이 생겼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예전 모델이다.
감염성 질환의 발병을 억제하기 위해선 영양 상태와 위생 상태도 큰 몫을 차지한다. 똑같은 홍역이라 할지라도 영양 및 위생 상태가 우수한 선진국과 영양 및 위생 상태가 열악한 빈국의 발병률과 치사율이 다르게 나타난다.
장티푸스나 결핵은 백신 없이도 선진국에서 퇴치되었다. 1960년대 홍역 백신이 미국에서 출시되기 이전부터 이미 홍역의 위세가 크게 꺾여 있었다. 홍역을 두려워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영양 상태와 위생 관념 덕분에 개체들의 면역력이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에 이르러서야 수두 백신이 의무 접종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수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렇듯 면역이란 것은 일종의 오케스트라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열악한 위생 환경에서 영양 결핍을 초래할 정도로 아무거나 막 먹고 살면서, 백신 하나 맞았다고 강한 면역력이 생길 리 없다. 건강할 리 없다.
현대 의학에선 병원체라는 용어를 쓴다. 병원체는 세균뿐 아니라 병을 일으키는 모든 미생물과 바이러스를 포함하고 심지어 프리온 같은 단백질도 포함한다. 면역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루이 파스퇴르의 단순한 세균 이론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의료 현장에서는 예전의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패혈증을 두려워하고 항생제 처방을 쉽게 한다. 학술지 《네이처》 2014년 12월 11일자에는 ‘병원체라는 용어를 버려라(Ditch the term pathogen)’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는데,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지나치게 강조한 의학 패러다임이 오히려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나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연초(年初)가 되어 학급에 독감이 돌아도 모두 다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독감 예방주사 덕분은 아니다. 독감 예방주사의 효율이 매년 평균적으로 20%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독감 바이러스가 아니라 아동 개인의 면역력이다.
충분한 수면, 운동, 영양 섭취가 좋은 아이들이 바이러스를 잘 이겨낼 수 있어 독감에 걸릴 확률이 낮다. 반면, 수면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이 독감에 걸릴 확률도 높다. 결국 병원균보다는 내 몸의 면역력이 변수인 것이다.
세균설 vs 내부환경설
19세기 의학계에는 위대한 과학자 두 명이 있었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다. 두 사람은 질병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패러다임이 서로 완전히 달라 많은 설전과 논쟁이 오갔다.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파스퇴르는 세균설(germ theory)을 주장했다. 간단히 말해 병균이 우리 몸에 들어와 감염되면 병에 걸린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세균설에 입각하여 원인이 되는 병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개발되었고, 이는 백신과 더불어 현대 의학의 기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당시 파스퇴르의 친구였던 클로드 베르나르의 주장은 전혀 달랐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균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의 내부 환경이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병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도, 우리 몸 안의 균형이 깨질 때 감염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면역이란 개념이 없을 때였지만, 지금 식으로 표현하자면 면역력이 약해질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의 피부와 장 그리고 피 속에 어차피 수 조가 넘는 균이 살고 있다. 이 중에는 좋은 균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나쁜 균도 있다. 코점막 속엔 감기 바이러스가 항상 붙어 있지만 그렇다고 늘 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평소에는 조화를 이루며 잘 살고 있는데, 내부 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때를 틈타 병원균이 증가하면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암도 마찬가지다. 암세포는 매일 생기지만 모두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면역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체내 환경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독감이 유행할 때, 어떤 아이는 독감에 걸리고 어떤 아이는 괜찮은 이유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사과가 있는데, 하나는 온전하게 그대로 두고, 다른 하나는 식탁 모서리에 부딪혀 멍이 들었다면, 멍이 든 사과가 더 빨리 썩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내부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두 과학자는 살아생전 수많은 토론과 경쟁을 했지만, 돈은 파스퇴르가 벌었다. 아무래도 파스퇴르의 세균설이 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각각의 병균에 맞는 항생제를 개발하거나, 병원체에 맞는 백신을 개발하는 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내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시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애매한 개념인 데다, 내부 환경을 좋게 유지하기 위한 영양, 운동, 스트레스 관리, 수면 같은 것들은 돈이 되질 않았다.
다만, 파스퇴르는 임종을 앞두고, “베르나르가 맞았어. 세균은 아무것도 아니야. 환경이 전부야”라며 고백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계 미국인 미생물학자 르네 뒤보(Renne Dubos)가 베르나르의 이론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대부분의 질병은 운 나쁘게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몸속에 있던 병균들이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뭔가 방해하여 균형이 깨지면, 그때 병균들이 들고일어나 병을 일으키고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역시 말년에 병원체가 병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다. 병원체는 자신들이 살아갈 서식지인 병든 조직을 찾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모기가 오염된 물을 찾는 것이지, 모기가 오염된 물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깊은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파스퇴르가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류는 파스퇴르에게 진 빚이 있고, 감사해야 할 것이 많다. 항생제 페니실린의 개발로 전에는 손도 못 써보고 죽는 질병들을 간단히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전쟁에서 수많은 목숨을 살려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베르나르와 뒤보의 이론이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분야가 기능의학이다. 아직은 멀었지만, 많은 의사들이 점점 이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 암이나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 질환들을 고치려면 베르나르의 내부환경설에 입각해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되지도 않는 알약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게 아니라 먹거리와 영양, 생활 습관, 수면, 스트레스, 운동과 같은 생활 환경부터 먼저 점검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사진 출처=펙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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