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혁명] 의사는 약을 처방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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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혁명] 의사는 약을 처방하는 사람이 아니다
  • 조한경(Joshua Cho, DC) 기능의학전문의
  • 승인 2024.03.1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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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n시사경제] 조한경(Joshua Cho, DC) 기능의학전문의

조한경 기능의학전문의
조한경 기능의학전문의

의사는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사람이지 제약 회사 세일즈맨이 아니다.

무슨 말일까? 의사의 무기가 제약 회사에서 출시한 의약품으로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의사들은 법적으로 정해진 진료 범위 안에서 다양한 치료를 행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에서 의사들은 약에만 의존한다. 환자와 5분 상담하고 바로 처방전으로 손이 간다. 증상에 맞는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라면 5분도 많다.

1분이면 충분하다. 실제로 그렇게 진료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 흔하다. 처방전을 빼앗으면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내과 의사들도 꽤 많다.

많은 의사들의 의식 속에는 제약 회사의 약이 아닌 것은 다 사이비이고 비과학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무리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도를 해보려는 의사를 동료 의사들이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곱지 않다.

근거 중심 의학이라는 강박 속에서 특정 치료 행위가 과학적인가 아닌가를 재단한다. 수천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제약 회사가 주무르는 과학이 온전할 리 없다. 공정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의사들 개인이 나빠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기능의학원(The Institute for Functional Medicine) 원장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존스(David Jones) 박사는 나쁜 의사가 되려고 의료계에 진출한 사람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나긴 의과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사고와 가능성이 축소된 것이다. 의대 교과과정이 제약 회사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오염이 심각하다. 의대 6, 인턴 2, 레지던트 4년의 기나긴 교육과정에서 굳어진 사고로는 어쩔 수가 없다.

미국에서 4차에 걸친 국가고시를 통해 의사 면허 자격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명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트레이닝을 통해 안전한의술을 행할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 된다. 그것이 의사의 최우선 덕목이다. 모든 의사들이 윤리적 지침으로 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나와 있다. “우선 해를 입히지 마라(First do no harm).”

그러나 불행하게도 통계자료들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안전하지 않다. 미국에서 연간 의료 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심혈관 질환과 암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2009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약물에 의한 사망자 수가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60% 이상이 약물 남용이 아닌 정식적인 진료를 통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사망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할 정도다. 제약 회사의 약물이 가장 위험한데도 의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치료법이다. 아니, 가장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유일한 치료법이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모를까, 훌륭한 영양학적 접근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에만 의존하면서 비타민 제품에 대해선 겨우 과다 복용할 경우 간에 안 좋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다. 한약도 간에 안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술 말고는 처방약보다 간에 해로운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복용하는 환자가 분기마다 간 검사를 해야 하는 이유다.

현대 의학 시스템 속에서 의사의 진료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것은 누군가 법적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 아니다. 암 치료처럼 일부 법적으로 제한된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의사들의 머릿속에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의과대학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고의 한계다. 영양학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양을 간과한다. 음식이 병의 원인이란 인식도 희박하고, 음식이 병을 고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다.

 

하지만 약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아이의 탄생부터 비만까지 모든 것이 의학적 응급 상황이다. 현대 의학이 응급 상황에 특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암과 같은 만성적인 대사 질환에 접근할 때도 응급 상황적 멘탈리티가 나온다는 것이다.

혈압이 높게 나왔다면 일단 혈압부터 내려야 한다. 고혈압은 응급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혈압부터 내리고 질문은 나중에 한다. 마침 간단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처방약이라는 수단이 있어 다행이다.

그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다른 문제가 생겨도 할 수 없다. 일단 지금의 응급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혈압약 부작용에 의한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또 다른 응급처치를 하면 된다. 부작용을 대비한 좋은 약이 있으니 문제없다. ‘과학적인 임상 시험과 연구를 마쳐 FDA가 인정한 약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의사들 입장에서 볼 때 약을 끊고 음식으로 병을 고친다는 주장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약이 아니고 겨우 음식이라니? 그것도 병을 완치시킨다고?

완치라는 말은 암묵적 금기어다. 증상을 완화하고 관리하는 것일 뿐 완치라는 단어를 자꾸 거론하면 오만하고 괴팍한 돌팔이 취급을 받는다. 환자들을 희망고문하는 사기꾼들이나 하는 소리다.

상당수 의사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혈압이나 당이 높아 약을 처방하면 처음에는 약효가 나타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약물에 대한 저항이 생기고 약효가 듣지 않는다. 그래서 약물의 용량을 늘리거나 다른 약을 추가한다. 환자의 건강 상태는 갈수록 나빠지는 것을 목격한다. 몇 년 후 더 안 좋은 상태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한다. 다시 돌아온 환자는 똑같은 방법으로 치료한다. 치료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증상 완화 요법만 거듭 반복한다. 어떻게? 약물을 이용해서.

이런 임상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의사는 두 부류로 나뉜다.

문제의식을 전혀 못 느끼고 그냥 똑같은 진료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의사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배워서 알고 지금 행하고 있는 현대 의학이 완벽하진 않지만 현재로선 최선이라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체의학적인 아이디어에 거세게 반발하는 부류들이다. 호기심도 없을뿐더러 질문조차 해보지 않고 우선 거부하고 본다.

또 다른 쪽에는 이건 아니다라는 걸 느끼고 깨어나는 의사들이 있다. 뭔가를 눈치채고 이건 아니라고 느끼는 것과 깨어나는 것은 다르다. 눈치를 채고 그래도 어쩌겠냐라고 자기 합리화로 덮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히 일부 의사만 몸소 다른 대안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심지어 침술을 공부하기도 하고 영양학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의사가 좀 그러면 어떤가?

나 역시 학교를 막 졸업하고 진료를 시작한 초반에는 의사로서의 역할이 증상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야만 좋은 의사라고 생각했다. 환자가 바로 통증이 멈추면 그것처럼 뿌듯한 경우가 없었고

당연히 의사의 역할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 환자들이 다시 돌아왔다. 통증도 더 심해지고 다른 건강 상태도 더 나빠져서 나타나는 민망한 상황을 접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 뻔하지만 당장 괜찮게 느끼도록 증상만 완화해주는 약이 존재하는 것도 문제다. 환자와 의사 모두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으니 제약 회사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강조하는 것이 음식, 수면, 스트레스 관리, 운동, 생활 습관 교정 같은 것들이다. 환자와 의사 모두 피드백이 중요하다. 음식을 잘 가려 먹었을 때 통증이 덜하다는 사실, 잠을 잘 잤을 때 통증이 감소한다는 사실. 환자들이 단 한 번이라도 경험을 통해 이러한 것을 직접 깨달으면 본인들의 병에 접근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런 것들을 시도해보고 자가점검을 해볼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해보면 인생이 바뀐다. 잠 좀 자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간단한 행위가 치료 차원에서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을 보고 환자들 스스로 놀란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진료 경험에서 비롯된 나의 생각이지만,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기능의학회.

기능의학은 단순히 질환의 증상만 억제하는 의학이 아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과 메커니즘을 찾아 인체 스스로 본연의 치유 능력을 회복하는 생리적 균형을 이루도록 유도하는 의학이다.

현대 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약물 의존적 증상 완화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현대 의학은 증상이 발견되면 그것을 없애는 약을 처방한다. 이 때문에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증상이 다시 돌아온다. 기능의학은 그게 싫은 거다. 증상이 문제가 아니라 원인을 찾아 제거하면 몸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몸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고, 몸에 해가 되는 것들을 빼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음식이 곧 약이고 약이 곧 음식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현대인의 질병 대부분은 음식이 원인이 되어 생긴 것이므로 음식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이 보여주는 증상만 억제하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 환자의 나쁜 생활 습관이나 환경을 찾아 손상된 몸의 기능을 되살리는 것이다. 현대 의학이 증상이나 환부에 집중한다면, 기능의학은 환자 자체에 집중한다.

 

기능의학의 다섯 가지 기본 철학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환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다르고 생화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약물로 똑같은 방법으로 치료할 수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개인 맞춤형 치료.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한다. 질병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우리 몸의 자연치유 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도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치료한다.

2. 기능의학은 과학적이고 근거 중심적인 의학이다. 심도 있는 과학 연구 활동을 통해 전에는 몰랐던 신체 내 생화학 작용과 네트워크 기능들이 밝혀지고 있다. 영양학적 지식들이 축적되면서 이를 통해 몸의 기능과 대사 활동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있다.

3. 우리 몸의 지적 능력과 스스로를 규제하는 통제력을 믿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몸이 스스로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을 믿는다.

4. 우리 몸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고, 노화 질환들을 예방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음을 믿는다.

5.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넘치는 활력을 발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기능의학은 질병을 갖고 있는 환자를 대할 때, 그 증상을 보자마자 어떤 약이더라?’ 하고 약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질문을 먼저 던진다. ‘왜 이 질병이 시작되었을까?’, ‘어떤 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못하고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기능을 되살려줄 수 있을까?’

많은 의사들이 잊고 있던 질문들이다. 너무 효과 좋은 약들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만성적인 대사 질환의 증상만 숨겨주고 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 치료해보자는 것이다.

미국 의학계에서도 기능의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09년에 미국기능의학회가 조직되었다. 기능의학은 학회 역사도 짧고 비교적 젊은 학문이지만 기능의학이 추구하는 아이디어는 1900년대 초반부터 존재해왔고, 1980년대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는 미국에서 기능의학뿐만 아니라 통합의학을 비롯해 대체의학들이 꽃피기 시작한 시기다. 최근에는 기능의학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하버드, 예일, 다트머스 등 26개 유명 의과대학에서 기능의학 수료과정을 채택하고 있다.

그의 유튜브 채널 ‘Dr. Joshua Cho’는 100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DrJoshuaCho.com

Drjoshuacho@alumni.usc.edu
 

 

 

jumsuk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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