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환경 개선과 창구 접근성 함께 설계해야…교대근무·거점점포 대안 검토

[nbn시사경제] 김성욱 대기자
은행 영업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쟁이 금융 접근성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노동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려는 조치가 대면 거래에 의존하는 고객에게는 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의 축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줄어드는 30분의 부담이 누구에게 집중되는지, 이를 보완할 서비스가 마련되는지에 있다.
금융권 보도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 9월 28일 은행 개점 시간을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시행 목표는 2027년 4월이며, 금융노조는 29일 지부대표자회의에서 합의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현재 시행 중인 조치와 향후 변경 계획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ㅡ 같은 30분이라도 고객이 감당하는 비용은 다르다
개점 시간이 늦어질 때 발생하는 불편은 고객의 생활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업 준비 전에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자영업자는 방문 일정을 다시 짜야 하고, 대체 인력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은행 방문이 가게 운영시간과 겹칠 가능성이 있다.
고령층과 장애인 고객의 접근성 역시 별도로 살펴야 한다. 모바일 인증이나 작은 화면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이용자, 이동 지원이나 동행이 필요한 고객에게는 은행 방문 시간을 자유롭게 바꾸기 어렵다. 다만 연령이나 장애 유무만으로 창구 의존도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 이용 업무와 지원 필요성을 기준으로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접근성은 은행 문이 열려 있는 시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동에 걸리는 시간, 창구 대기시간, 필요한 업무를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낼 수 있는지까지 포함한다. 개점시간 변경의 효과를 평가하려면 이런 비용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ㅡ 디지털 금융 확대가 창구 수요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국은행의 ‘2024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는 연령대별 지급수단 선호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20~30대에서는 모바일카드, 40~50대에서는 신용카드, 60대 이상에서는 현금 선호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로 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피해 규모를 산출할 수는 없다. 다만 금융의 디지털 전환이 모든 고객에게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현금 취급이나 서류 확인, 복잡한 상담이 필요한 거래에서는 대면 창구의 역할이 남는다. 모바일 서비스 이용자가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아 있는 창구 수요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ㅡ 창구 영업시간과 직원 노동시간을 함께 점검해야
노동환경 개선의 필요성도 검토 대상이다. 이번 합의안에는 개점시간 조정 외에 주 1시간 이내에서 출근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자율출근제와 금요일 고객마감제도 등이 포함됐다. 금융노조는 이를 일·생활 균형을 개선하는 조치로 설명하고 있다.
은행이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과 직원의 전체 노동시간은 구분해야 한다. 개점 전 준비와 고객 응대 이후 처리 업무를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실제 근로시간과 업무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영업시간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노동환경 개선 효과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업무가 짧아진 시간에 집중되거나 잔업으로 넘어간다면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고객 대기시간과 직원의 실제 근로시간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ㅡ 시행 전 필요한 것은 이용 공백을 줄일 구체적 설계
nbn시사분석의 관점에서 우선 과제는 오전 9시부터 9시 30분 사이의 창구 수요를 파악하는 것이다. 방문 고객 수뿐 아니라 거래 종류, 처리시간, 다른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오전 이용자가 적더라도 그 시간에만 방문할 수 있는 고객이 있다면 별도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수요가 높은 지역의 거점점포 운영, 교대근무를 통한 시간대별 인력 배치, 전화로도 이용할 수 있는 상담 예약 등을 검토할 수 있다. 고령층·장애인 고객을 위한 지원 창구와 자영업자의 현금 업무를 처리할 대안도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들 방안은 현재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접근성 저하를 줄이기 위한 검토 대안이다.
시행 이후에는 평균 대기시간, 업무를 마치지 못한 고객 비율, 재방문 건수와 직원의 초과근로 변화를 비교해야 한다. 서비스 공백이 확인되면 운영시간과 인력 배치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은행 영업시간 단축의 성패는 노사 합의 이후의 서비스 설계에 달려 있다. 금융노동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면서 대면 거래가 필요한 고객의 이용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이번 변화의 핵심 평가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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