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혁명] 제약 회사: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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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혁명] 제약 회사: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비극
  • 조한경(Joshua Cho, DC) 기능의학전문의
  • 승인 2023.10.2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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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경 기능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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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n시사경제] 조한경(Joshua Cho, DC) 기능의학전문의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비극은 제약 회사가 의료계를 장악했다는 데 있다. 그게 뭐 어떠냐는 식으로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 제약 시장을 주도하는 거대 다국적 제약 회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제약 회사의 첫째 목표는 매출 증대와 이윤의 극대화다. 그 외의 다른 목표는 없다. 질병을 정복한다거나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고결한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매출을 올려 회사의 주가를 띄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결코 환자들을 섬기지 않고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거대 다국적 제약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그대로 적혀 있다. 회사의 비전과 목표가 그렇다고 당당하게 명시되어 있다. 기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숨김없이 당당하게 적어놓았건만 환자들과 의사들만 모르는 듯하다.

최근에 미국 내 처방 의약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약품의 종류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폭의 가격 상승이다. 이러한 미국 의약품 가격 급등 스캔들을 보면 거의 갈취, 사기 수준의 범죄에 가깝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MJ)》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폭로했고, CBS뉴스와 <60분> 같은 시사 프로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미국민의 처방약 지출 비용은 2013년 3260억 달러 수준이었던 것이 점차 증가하여 2018년에는 1조 3000억 달러로 치솟을 전망이다.

2015년에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의약품 가격 스캔들이 발생했다. 62년 전에 출시된 약 가격이 갑자기 한 알에 736달러로 급등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마틴 슈크렐리(Martin Shkreli)는 튜링(Turing Pharmaceutical)이라는 벤처 제약 회사를 설립하고 에이즈 치료제로 쓰이던 다라프림(Daraprim) 판권을 사들인 뒤 한 알에 13.5달러이던 약값을 하루 만에 736달러로 올려버렸다. 환자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약값이 55배 상승한 것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생명 유지를 위해 연간 10만 달러에 달하는 약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마틴 슈크렐리는 의회 청문회까지 불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3년 10월 천식 치료제 알부테롤(Albuterol) 2mg 100정 한 병의 가격은 11달러였으나, 2014년 4월부터 434달러로 급등했다. 이는 4000%에 달하는 가격 상승이다. 간질・편두통 치료제 디발프로엑스(Divalproex Sodium) ER의 경우, 2013년 10월 80정에 31달러였던 것이 2014년 4월 234달러로 상승했다(736% 증가).

그 밖에 항생제 독시사이클린(Doxycycline)은 6.3센트에서 3.36달러(5300%)로, 항고혈압제 캡토프릴(Captopril)은 1.4센트에서 39.9센트(2800%)로, 항우울제 클로미프라민(Clomipramine)은 22센트에서 8.32달러로 증가(3780%)하였고, 콜레스테롤 억제제 프라바스타틴(Pravastatin)은 2013년 10월부터 2014년 4월까지 가격 상승률 573%를 기록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연간 59억 달러의 비용 부담을 안겼다. 누군가 돈을 벌기 위해 전 국민의 부담이 상승한 것이지 다른 이유나 설명은 없다.
항암 치료제 트레티노인(Tretinoin)의 1개월 치(10mg 40캡슐) 비용은 1100달러다. 이 약에 포함된 유효 성분의 원가는 80센트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사기 아닌가?

제약 회사들은 의약품 가격이 비싼 이유를 연구개발 비용 때문이라고 항변하지만, 40년 전 출시된 항암제도 여전히 가격이 높다. 병의 위중에 따라 약값이 책정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 환자에겐 부르는 게 값이다.
미국 내 제약 회사들의 마케팅 지출 대비 연구개발비는 19:1이다. 연구개발 비용 1달러당 19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셈이다. 그리고 의회 로비 비용으로는 연간 1억 8000만 달러를 지출한다. 연구개발 비용 때문에 약값이 비싸다는 것은 옹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제약 회사의 사업 목적이 질병 퇴치에 있다고 믿는 것은 허상이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란 미명 아래 이런 담합이나 폭리를 규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바마케어나 메디케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약값을 충당하기 위해 월 건강보험료가 올라갈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미 오바마케어는 전 국민 의료보험이 아닌 ‘강제보험’으로 혜택보다는 중산층의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밀어붙이려 하는 의료보험 민영화는 미국처럼 전문의약품 가격을 폭등시킬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출처=프리픽)
(출처=프리픽)

이렇듯 돈에 철저한 제약 회사들이다 보니 로비도 극심하다. 미국에서 제약 산업은 가장 로비가 심한 산업 분야 중 하나다. 군수업체나 오일이 아니라 제약 회사다. 미국 상하원 의원 1인당 2.5명의 제약 회사 로비스트가 활동한다. 입법기관뿐만 아니라 보건 당국도 제약 회사가 쥐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내 신약 허가 부서 재정의 60%가 제약 회사로부터 온다. FDA는 제약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1992년 미 의회는 ‘전문의약품 허가 신청자 비용 부담법(Prescription Drug User Fee Act)’을 통과시켰다. 신약을 허가받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제약 회사가 부담한다는 내용의 법안인데, 바꿔 말하면 FDA를 돈으로 매수하겠다는 뜻이다. 그 결과, 2010년 제약 회사가 신약 신청 비용으로 FDA에 지급한 금액이 5억 6920만 7000달러에 달했다. 제약 회사가 FDA에 지급한 항암제 신약 신청비는 건당 평균 140만 5500달러에 이른다(2010년 기준). 특이한 것은 이 법안을 미 의회나 FDA가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제약 회사 스스로 의회에 찾아가서 요구한 것이다. 정부 기관이자 국민들을 섬겨야 할 FDA의 신약 허가 부서를 통째로 사버린 격이다. 제약 회사 입장에서는 효과가 있었다. 2008년 이후, 암 치료제 승인 기간이 평균 21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FDA가 세금으로만 운영된다고 생각해 공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FDA와 같은 보건 당국을 신뢰한다. ‘FDA 승인’이라는 말은 마법과도 같은 힘을 갖고 있어서 단번에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다. 하지만 어떤 약이 FDA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심한 경우 사망 사고도 빈번하다.

또 FDA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효과가 보장된다는 뜻도 아니다. 질병을 완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FDA의 승인을 받은 의약품이 리콜되는 사태는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제약 회사의 의약품이 충분한 실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믿는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그처럼 큰 환상이 없다.

2013년 8월 15일, FDA는 퀴놀론 계통의 항생제 약물이 영구적인 신경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퀴놀론 계통의 항생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다. 이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한 의료 사고 소송이 2000여 건 넘게 계류 중에 있으며, 이에 대한 조치로 FDA는 신경 손상에 대한 경고문을 약물 포장에 삽입할 것을 명령했다. FDA가 뒤늦은 조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고 조치에 대한 정보는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전달되지도 않았다. 어느 환자가 의사가 처방한 약물의 포장지를 구경이라도 해볼 기회가 있겠는가?

2006년 제약 회사 머크(Merck)의 바이옥스 진통제가 심장마비 부작용을 일으켜 6만 명이 사망한 스캔들이 있었다. 밝혀진 것만 6만 명이었다. 바이옥스 진통제 사건이 단순 소송에 그치지 않고 의회 청문회까지 열리는 스캔들로 번진 이유는 따로 있다. 바이옥스의 경우도 제약 회사가 심장마비 사망 부작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제약 회사뿐만 아니라 FDA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통속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제약 회사와 FDA가 그 사실을 감추고 감추다가 FDA의 내부 고발자가 문제 제기를 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결국 바이옥스 진통제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머크는 60억 달러(약 6조 7000억)의 벌금형을 받으며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국방 예산 단위의 어마어마한 액수처럼 보이지만, 60억 달러는 머크의 몇 주 치 매상에 불과한 금액이다. 그야말로 꿀밤 한 대 맞는 듯한 가벼운 처벌이다. 머크의 사장은 중국 분유 회사 사장처럼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퇴직금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FDA 고문으로 취임한 것이다. 후임 사장들이 뭘 보고 배울까? 아무런 경각심이 생길 리 없다. 불법·합법을 가리지 않고 매출만 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바이옥스 스캔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미국의 여타 산업과 비교했을 때 부패와 타락이 가장 심한 곳이 제약 산업이다. 미국 내 제약 회사들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벌금형을 받는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 규모 또한 천문학적이다. 2012년 세계 3위 제약 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항우울제 신약 웰부트린(Wellbutrin)의 홍보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각종 불법 로비를 펼치고, 거짓 실험을 게재하도록 의학 저널에 뒷돈을 뿌리는 불법행위를 저지르다 덜미가 잡혔다. 미국 정부와 30억 달러의 배상에 합의했는데 10억 달러는 범죄행위에 대한 벌금이고 20억 달러는 집단소송 합의금이었다. 이런 범죄행위는 글락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5년 세계 1위 제약 회사 노바티스(Novartis) 역시 의사들을 상대로 한 리베이트 의혹으로 3억 9000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노바티스는 한국에서도 똑같은 행위를 하다 적발되어 처벌받았다. 2016년 한국노바티스가 의료인 등에 학술 세미나와 강연료 지급, 식사 접대 명목으로 총 72억 원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전·현직 임원 6명이 불구속 입건되고 과징금 23억 5300만 원을 부과받았다. 사실 이런 탈법행위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대부분의 제약 회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2009년 화이자(Pfyzer)는 23억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역시 화이자의 몇 주 치 매상에 불과한 금액이다. 2009년 일라이릴리(Eli Lilly)는 조현병 치료제 자이프렉사(Zyprexa)의 불법 마케팅 혐의로 14억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일라이릴리의 2008년 연 매출은 200억 달러에 달했다. 웬만해선 형사처벌이 없다 보니 제약 회사들은 이러한 벌금을 사업 비용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징벌적 벌금형을 받아도 매출에 비하면 벌금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니 문제 될 것이 없다.

삼성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는 큰 뉴스가 되는데,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의약품만은 무사하다. 사람들이 알지도 못한다. 뉴스에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제약 회사가 언론까지 장악한 결과다. 미국과 뉴질랜드만 전 세계에서 처방약 광고를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들이다. TV나 신문 광고를 통해, 그리고 지분 소유를 통해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를 듣는 것이 아니라 주는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다.

제약 회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곤란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위법행위를 밥 먹듯 자행하는 범죄 기업이다. 다국적 제약 회사가 되었든, 시골 장터의 약장수가 되었든 약장수는 약장수일 뿐이다. 조직적 힘과 자금을 동원해 경쟁 관계에 있는 비타민, 미네랄, 약초와 같은 자연치료 물질들을 음해한다. 의사와 교수들을 매수하고, 환자들에게는 허위 과장 광고를 한다. 제약 회사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건강을 지키기는커녕 환자들을 해치고 상하게 하고 죽게 만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는 그렇다. 그런 제약 회사에 의사도 매달리고 환자도 매달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홈페이지 www.DrJoshuaCho.com

 

Drjoshuacho@alumni.usc.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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