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변호사의 이기는 법] 이혼하고 돈 펑펑 쓰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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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숙 변호사의 이기는 법] 이혼하고 돈 펑펑 쓰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 임경숙 변호사
  • 승인 2023.12.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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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숙 변호사
임경숙 변호사

[nbn시사경제] 임경숙 변호사

‘혼인신고서 접수 후 취소는 절대 불가합니다’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할 때 한 번쯤은 봤을 경고(?) 문구이다. 한 번 접수서를 내면 취소가 절대 불가하니,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이겠다. 물론 그 당시에는 행복에 가득 차서 저런 안내 문구가 잘 들어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결혼 생활이 행복만 가득한 것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결혼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기도 하고, 결혼 생활 자체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이혼율이 점차 늘어가면서, 우리 주변에서도 이혼한 사례들을 적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혼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사람과는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고, 이혼해야겠다고. 분기탱천해서 이런저런 증거들을 잔뜩 들고 찾아오는 의뢰인이 있는 반면,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법원으로부터 날아온 이혼소장을 받아들고 놀라서 어쩔 줄 모르며 찾아오는 의뢰인도 있다. 자기가 왜 이혼 소송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이혼에 합의하였다면,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오지는 않는다. 부부가 직접 법원으로 간다.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오는 경우의 대부분은 상대방과 대화가 안 된다거나,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다. 

어느 날 찾아온 의뢰인은 혼인생활 40년이 넘은 부인이었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잘 생긴 청년을 만나 콩깍지가 씌어 친정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후딱 결혼을 했다.

잘 생긴 청년은 젊은 아가씨에 비해 가정환경이나 경제력, 학벌 등의 조건이 많이 기울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철부지 아가씨는 오로지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궁색함 없이 편안하게 자랐기 때문에 남의 집안도 자기 집안처럼 다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단다. 돈은 항상 집에 있고 필요할 때는 그냥 쓰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단다. 

(출처=프리픽)
(출처=프리픽)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다가온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시부모님은 시골에 자기 땅 없이 소작농을 하며 사시는 분들이었고, 남편은 그저 그런 직장을 다니며 박한 월급을 받았다. 딸이 사는 게 딱해 보였던 친정 부모님은 신혼부부에게 정미소(방앗간)를 차려줬다. 옛날에는 농사를 지으면 정미소에서 쌀이나 보리를 빻아주고 그 대가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친정에서 세차장도 차려주고, 한정식 식당도 차려주면서 경제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무능했던 남편은 직장도 그만두고 처갓집 도움으로 지역 유지 행세를 하며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다. 물론 경제권은 부인이 가지고 있었다. 전국 요지에 부동산도 가지고,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 아니, 잘 사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과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하였다. 아내는 소장을 받아들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었다. 응급실에 실려가 검사를 받아보니 쇼크에 의한 급성 뇌졸중이었다. 긴급하게 수술을 진행했다. 

아내가 퇴원하고 집에 오니 남편은 짐을 싸서 원룸으로 가출했다. 기나긴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남편은 평생 처갓집과 부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부인이 경제권을 가지고 있어서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어서 불만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혼을 하고 있는 돈을 펑펑 쓰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일이다. 부인과 아들딸을 비롯한 가족들이 겪을 아픔의 무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인을 대리한 저자는 법정에서 부인에게 재판상 이혼 사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재판부도 부인 측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아 남편의 이혼 청구를 기각하였다. 자유를 선언하고 집을 나갔던 남편은 주머니가 궁색해지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혼 재판의 경우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나뉜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경우, 파탄주의를 채택한다. 이혼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혼인 생활이 파탄 났다면 이혼이 성립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배우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축출이혼을 방지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축출이혼이란 유책배우자가 무책배우자를 고의로 쫓아내는 이혼이다. 예전에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제적 지위가 낮은 조강지처를 일방적으로 쫓아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을 축출이혼이라고 한다. 현재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고수하고 있지만,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면서 파탄주의에 근거한 하급심 판결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혼인 생활이 지속되기 힘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가정 파탄의 책임 유무를 따지기보다는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상대방이 이혼하고 싶다고 하여 모두 이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 사유가 타당하고, 혼인의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혼인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회복 가능성이 있으며,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최대한 그 가정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옳다. 가정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기에 가정이 굳건해야 사회가 반듯하고 사회가 반듯해야 나라도 튼튼하기 때문이다. 가화만사성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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