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혁명] 현대 의학의 정체성: 문제 해결이 아닌 증상 완화
상태바
[환자혁명] 현대 의학의 정체성: 문제 해결이 아닌 증상 완화
  • 조한경(Joshua Cho, DC) 기능의학전문의
  • 승인 2024.01.23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한경
조한경 기능의학전문의

[nbn시사경제] 조한경(Joshua Cho, DC) 기능의학전문의

현대 의학이 규정한 암 표준 치료는 단 세 가지. 수술, 항암, 방사선이다. 그 외의 치료법들은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다루지 않는다.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항암, 수술, 방사선은 어떤 검증을 거쳐 현대 의학에서 표준 치료로 인정받게 된 것일까?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 지금의 표준 치료들이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고 살피는 과정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러지 못한다. 직장 문제, 인간관계, 돈 문제, 자녀들 문제, 우리 삶 자체가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알아볼 것 없이 전문의와 병원에 맡기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의사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 과학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하는 믿음. 의사와 과학자…… 남들이 할 일이라고 여긴다. 자기 병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대 의학의 정체성은 ‘환원주의적 대증요법’이다. 환원주의는 관찰 가능한 사물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영적인 세계나 사람의 영혼은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해부학적으로 발견된 적도 없고, MRI나 CT, 초음파로 촬영된 적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에 있다. 관찰 불가능한 것을 자꾸 거론하면 ‘비과학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영적인 세계나 정신적인 문제들은 간과되고 무시되기 일쑤다. 모든 걸 수학적으로 계량하고 분석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관찰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아직’ 볼 수 없는 것일 뿐 먼 훗날 보게 될 수도 있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구(球) 형태라는 것을 인류는 오랜 기간 관찰할 수 없었다.

우리 몸속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만 가지 생화학 작용이 일어난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서 스스로 알아서 벌어지는 일이다. 몸 전체 세포 수보다 많은 장내 세균총의 수를 거느리고 한데 모여서 잘 살아가고 있다. 찢어지면 아물고, 뼈가 부러지면 다시 붙고 하면서……. 이런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뭔가 있겠지만 아무도 모른다. 과학은 DNA를 발견했다고 좋아했지만 궁극적인 답을 얻지는 못했다. DNA는 도대체 왜 그렇게 명령하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전혀 답이 안 된다. 이처럼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힘, 다시 정상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대증요법’의 유일한 목적은 말 그대로 ‘증상 완화’일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뇨의 원인은 인슐린 저항이다. 그런데 현대 의학은 혈당에만 집중해서 혈당만 낮추려고 한다. 그걸 치료라고 한다. 마치 폐에 염증이 생겨서 몸에 열이 나는데 폐의 염증은 놔둔 채 열만 치료하는 격이다. 폐의 염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항생제가 필요한데 열을 낮추는 해열제만 처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환자가 당뇨 진단을 받아 당뇨약을 처방받게 되면 그 약은 당뇨를 고치려는 목적으로 처방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 평생 먹으면서 혈당을 관리하는 약이다. 현대 의학은 당뇨 치료를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 혈압도, 콜레스테롤도, 암도 모두 마찬가지다.

(출처:프리픽)

 

나름대로 설명은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 질환 대부분은 현대 의학으로 근본적인 원인 규명이 어려운 질병이어서, 완치보다는 더 이상의 병증이 심화되거나 합병증이 발병하는 것을 막는 치료에 목적을 둔다는 것이다. 당뇨나 고혈압의 근본적인 완치가 어려운 이유가 뭘까? 음식과 생활 습관에 원인이 있는데, 음식이나 생활 습관 개선을 치료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병을 ‘완치’하려는 시도를 하거나 말만 꺼내도 돌팔이 내지는 사기꾼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모두 환원주의적 대증요법을 트레이닝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원주의적 대증요법은 철 지난 임상 모델이다. 간단히 말하면 “무슨 병에는 무슨 약” 하는 식으로 공식이 정해져 있다. 장터를 떠돌던 약장수의 모습이다. 그런 의학을 트레이닝받는 것이다. 환자들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다. 의사의 역할도 치유하는 치료자가 아니라 질병의 증상만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하다. 뭘로? 반드시 약으로만. 그것도 제약 회사의 처방약으로만. 처음부터 이와 같이 편향된 의학의 한계를 알고 시작하는 의대생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이를 알고 병원에 가는 환자들도 많지 않다. 당뇨 환자가 의사가 처방한 당뇨약을 복용하고 피검사 결과 정상 혈당이 나오면 “관리가 잘되고 있다”면서 의사는 좋아한다. 의사가 좋다고 하니 환자도 안심한다. 그러나 혈당만 관리되고 있을 뿐 시간이 갈수록 당뇨병 상태는 점점 악화된다. 하지만 의사는 혈당이 잘 관리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거기까지가 치료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잘 관리하면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자들의 상태가 악화되고 부작용이 발생해도 약을 처방한 의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응급실이 있고, 다른 진료 과목 의사들의 몫이다. 당뇨약을 처방해 환자를 관리해오던 의사는 법적 책임도 없고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저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환자들의 기대와는 많이 어긋난다. 실망스러울 수 있다.

환원주의가 바라보는 우리 몸은 언제든 고장 날 준비가 되어 있는 생화학적 기계에 불과하다. 영혼이나 영적인 영역을 인정하지 않고, 신체는 각각의 파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계의 부속품처럼 몸의 부위별로 제약 회사가 개발한 약이 있어서 해당 약을 처방하면 되는 것이다. 편두통이 있으면 편두통약 하나를 처방받고, 위산역류가 있으면 위산역류약 하나를 처방받는다. 고혈압약 하나, 당뇨약 하나, 관절염약 하나 그리고 그 약의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한 약들이 또 두세 개씩 처방되는 그런 구조가 갖춰져 있다.
《미국 의약품집 (Physician’s Desk Reference) 》에는 수만 가지 의약품이 등록되어 있지만 ‘완치’를 위한 약은 몇 가지 없다. 항생제 몇백 가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들이다. 대증요법인 것이다.

환원주의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보다 똑똑하다. 인간이 신보다 똑똑하다. 그래서 우리 몸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환원주의적 대증요법을 트레이닝받은 의사가 제약 회사의 화학 약품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우리 몸의 대사 활동에 개입해서 증상을 없애버리는 것이 치료 목적이고 철학이다. 그러니 항생제, 항염제, 항고혈압제, 혈당억제제 등 전부 다 증상을 억제하고 죽여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암의 경우에도 항암제밖에 없는 것이다. 

왜 ‘대증요법’이 현대 의학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물론 환자들, 즉 고객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빠른 효과를 보는 치료나 약물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강력하고 효과가 빠른 약제들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화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물질들을 얻을 수 있었고, 이러한 물질들로 좀 더 강력하고 빠르게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바라는 바였다. 그전까지 의사들에게 치료약이란 자연 물질과 약초밖에 없었지만 화학 약품이라는 전혀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화학 약품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의사들과 자연 약제를 고집하는 의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 권력의 균형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깨졌다.

(출처:프리픽)

미국의사협회는 의학을 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강력한 금융 세력의 자본을 끌어들였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잠재적으로 수익성 좋은 새로운 의학적 치료들은 금융권의 호기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록펠러와 모건, 카네기 재단의 재정적 후원은 새로운 의료 산업의 경제적 기초가 되었다. 록펠러와 카네기 같은 금융가들은 의학의 발전을 위해 의과대학에 보조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의과대학 이사회에 참여했는데, 이는 의과대학들이 돈을 지원한 투자 관계자들에 의해 장악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병원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최고의 교수들과 의료진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현대 의학은 제약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금융가들이 곧 화학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외형상으론 의학 발전이라는 자선사업이었지만 세상에 공짜가 있을 리 없다. 이후 의사들은 제약 회사의 의약품만 배우게 되었고 그 외의 것들은 의대 교과과정에서 사라졌다. 의사들이 10년 넘게 의대를 다니면서도, 영양학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제로에 가까운 이유다. 

제약이 의학의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현대 의학은 생약이나 식품을 비과학적이라 여겨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고, 일반인들도 그런 사상을 따르게 되었다. 병원에서 약만 처방하고 음식이나 생활 습관을 소홀히 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환자는 많지 않다.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고 증상을 없애기 위한 약만 처방하는데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대증요법으로는 역류성 식도염 하나도 고칠 수 없다. 혈압도 마찬가지고, 당뇨도 마찬가지다. 무좀도 못 고치는데 암을 고쳐달라며 제약 회사와 병원에 수천억 달러를 갖다 바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현대 의학을 비판하고 의사들을 성토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확한 관점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면 한 번쯤 따져보고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대부분의 환자들이 스스로 뭘 모르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냥 건강 문제가 생기면 서둘러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야 하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심어준 믿음이 있을 뿐이다.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치료법이나 다른 접근법을 구경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의 환원주의적 대증요법을 수련한 의사들에겐 장점이 있다. 이들은 트라우마 케어에 능숙하다. 응급의학과 수술이 장점이다. 일부 감염성 질환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데 능하다. 여기에는 성형도 포함된다. 노바케인 마취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냈다. 그러니 현대 의학의 대증요법이 필요할 때와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환자들이 지혜롭게 잘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현대 의학이 모노폴리가 되어버려서 다른 모든 상황에도 간섭하려는 것이 문제다. 생활 습관 교정과 식습관 개선이 훨씬 더 절실한 만성 질환이나 성인병도 모두 응급의학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다. 음식으로 치료할 것을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문제다. 겨우 증상만 다루는데도 전면에 나서서 다른 방법들을 무시하거나 핍박하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의사들이 이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의학적 접근법과 시스템에 부족함을 느끼는 의사들이 많다. 본인들이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물의 부작용이나 미미한 효과에 자괴감을 느끼고 개선되기를 원하는 의사들이 있다. 새로운 접근이나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동료 의사들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의사들이 있다. 의학적 자존심이나 철학에서 해방되어 환자의 몸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해 보다 나은 방법을 찾아 헤매는 의사들이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기능의학이다.

그의 유튜브 채널 ‘Dr. Joshua Cho’는 100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DrJoshuaCho.com

Drjoshuacho@alumni.usc.edu

nbn 시사경제, nbnbiz


주요기사